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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admin 2018.06.29 05:57 조회 수 : 4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The Healing at the Pool of Bethesda

요한복음 5:1-8

John 5:1-8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Some time later, Jesus went up to Jerusalem for one of the Jewish festivals. Now there is in Jerusalem near the Sheep Gate a pool, which in Aramaic is called Bethesda[a] and which is surrounded by five covered colonnades. Here a great number of disabled people used to lie—the blind, the lame, the paralyzed. [4] [b] One who was there had been an invalid for thirty-eight years. When Jesus saw him lying there and learned that he had been in this condition for a long time, he asked him, “Do you want to get well?”

“Sir,” the invalid replied, “I have no one to help me into the pool when the water is stirred. While I am trying to get in, someone else goes down ahead of me.”

Then Jesus said to him, “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설교음성파일 듣기: 062418.mp3

 

 

38년이나 갖고 있던 병이 나음을 받은 후에도 예수님께  감사나 감격이 없습니다.

과연 무덤덤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고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는 것은 초막절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초막절은 9-10사이에 치러지는 절기인데 건기철이 끝나고 우기철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절기였습니다. 초막절은 38광야 생활 (신2:14) 동안 방황하던 유목생활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어떤 절기인지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3절에 보면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라는 말은 통해 때가 베데스다의 못에 물이 유입되기를 고대하는 시점이며  이는 초막절을 가리칩니다.

 

명절을 보내며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은 양문(Sheep gate) 에서 가까운 베데스다라는 못에서 병자를 만납니다.

베데스다란 “자비의 집” 물이 흘러 나오는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가뭄끝에 비가 오기 시작하면 지하의 수로를 따라 간혈천의 물이 연못으로 유입되 었습니다. 예수살렘 사람들은 이때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에 먼저 들어 가는 사람이 병을 고침 받는 다는 미신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38년동안  병으로 신음하던 남자가 그런 미신에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못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를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물으셨습니다.

 

A.예수님의 물음에 병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How did the sick answer Jesus’ question?

 

1.  자신의 암담함 만을 늘어 놓았다.

     He was caught up in his inabilities

  •   벙을 고칠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연못 뿐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물이 동할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가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 가기에 자기에 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고 항변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의 물음에 낫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만나고 대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찾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분이 나의 삶의 해결사라는 생가과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바른 삶을 살아갈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순간 물으십니다.  “낫고자 하느냐?”  우리의 대답은 “주님 낫기를 원합니다.” 라는 즉각적인 응답이  필요합니다.

 

2. 병자는 고침을 받았음에도 깨닫지 못했다.

    Even when healed, the sick did not gain the realization

  • 주님의 치유의 역사는 믿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깊으신 섭리에 대해 우리는 이해할 없지만, 주님은 그에게 “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명하셨습니다. 그는 다리에 힘이 생겼고, 걸을 있다는 기쁨에 바로 장소를 떠났습니다. 38동안 전혀 체험하지 못했던 그는 얼마나 기뻣고 얼마나 걷고 싶었겠습니까?  기쁨에 겨워 걸어가다가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과 마주쳤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묻습니다. “유대인들이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요5:10)
  •  
  • 벙나은 사람이 대답합니다.

대답하되 나를 낫게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나리 한대(요5:11)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사람이 누구냐 하되”(요 5:12)

  • 고침을 받았다는 기쁨에 흥분된 나머지 그분께 감사하는 말도 하지 못했고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묻지도 않고 온것입니다.(요5:13)
  •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그는 베데스다로 돌아가 보았지만 그곳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하지만 , 뜻하지 않은 성공을 하기도 하고 몹쓸 병에서 나음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적과 같은 일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운이 좋아서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것은, 우리 삶의 이면에 항상 주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B.구원의 과분한 은혜를 받은 자

    To those that received the tremendously undeserving grace of salvation

 

우리는 구원이라는 과분한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나쁜 일들이 생기면 내가 잘못했나 하면서 삶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좋은 일들이 생기면 즐거움에 심취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기치 못한 은혜에도 주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깨달아 아는 영적지각이 필요합니다.

 

1. 자신의 안위만 찾는 자는 결코 주님을 증거할 없다.

    To those that seek only their own consolation and sympathy; they cannot witness of Jesus Christ our Lord

병고침은  잠시 그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안식일에 금하는 것을 보면

 처소에 머므르는 것(출16:29)

 불을 피우지 않는 것(출35:3)

짐을 올기지 말고 일하지 말것(렘17:22),

상업적인 일이나 놓사일을 멈춤(느13:15-22) 같은 일들을 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기 사항을 만드신 것은 사람의 휴식을 위한 것입니다. 노예까지도 모두 쉬게 하려는 하나님의 자비의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런 하나님의 자비의 뜻을 무시한 금기 사항에만 집중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지킨다는 구실로 만씀을 확대 해석하고 많은 규정들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구전을 기록한 마쉬나에서 안식일을 다룬  샤밧 편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39가지를 규정해 놓았습니다.

씨뿌리기,  밭갈기,  빵굽기,  세탁하기,  잠자리 펴기, 두땀 이상의 바느질,  물건 끌어 내리는 것,  물건 쌓아 올리는 것,  망치질,  매듭매기,  물건 옳기는 것,  심지어 식탁위의 부스러기의 양이 올리브 크기를 초과하면 치울 수가 없었습니다.

 

중에 오늘 본문 말씀과  연관되는 규정이 있는데  곳에서 다른 곳으로 물건을 옮기는 이라는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병나은 사람은 주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에 자신이 깔고 있던 자리(Mat)들고 걸러 갔습니다.

바로 점이 유대인들의 눈에 띄었고 유대인들은 그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심각한 죄를 지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병고침 받은 기쁨도 잠시 자리(Mat)옮긴 죄로 오히려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병고침 받은 자는 오조한 마음을 갖고 제사장에게 병이 나은 것을 보여 주고 확인을 받기 위해 성전에 들어 갔을 자기 병을 고쳐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합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5:14)

  • 예수님께서는 병고침만을 기뻐하지 말고 엉원한 생명을 잃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2. 은혜를 입고도 오히려 배신하는

    To betray the grace of Jesus Christ

  그는 예수님의 경고는 귀로 듣고 귀로 흘리고는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자 유대인들에게 바로 달려 갔습니다. 자기의 허물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은, 모두 예수란 사람이 시켜서 그렇게 했던 것이지 자신이 원해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대한 박해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어런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요5:16)

병고침을 받은 후에 예수님을 전파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는 병고침을 받은 오히려 예수님을 향한 박해를 불러 왔습니다.

 

주님께 은혜를 입은 우리의 삶은 그분께 감사하고 그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을 향한 빚진 자의 삶이 아닌 우리의 안위와 욕심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주님을 욕되게 만들고, 팔아 먹는 인생으로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이익을 보기 보다는 오히려 손해를 있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런 손해는 앞으로 누릴 영생에 비하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주의 뜻을 행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기뻐할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교훈 Application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의 물으심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일어서기를 원하비다.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나았음을 감사합니다.

저의 문제를 해결 받았음을 감사합니다.

제맘에 평안 주심을 감사합니다.

Do you want to get well?

How will you answer if Jesus asked you this question?

I do want to be well. I want to get up.

We need to act “right now”

Lord, thank you for making me well

Thank you for resolving my problems

Thank you for the peace you have given to me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구러하면 모든 지각에 뒤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Philippians 4:6-7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 situation,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설교 : 정득선 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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