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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

songgang 2013.11.08 17:50 Views : 696 Recommend:31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
히브리서 3:7-19

첫째, 마음을 강팍하는 일을 하지 말라(7-8)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없다고 모세를 비난하며 하나님을 원망( 출 17:7 ; 민 20:13) 한 사건을 통해 불신앙의 원인을 제시해 줍니다. 그 원인은 바로 마음의 강퍅함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믿지 않음으로써 불순종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 신 1:35).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에 들어가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신 1:36). 이처럼 불순종과 순종의 차이는 한 개인 뿐 아니라 전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

  1.  하나님의 음성
  1)  들어야 할 시기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 14).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현재 부름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오늘'이라는 현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 히 4:7).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현재의 부름에 응답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을 허락 하십니다 ( 수 14:9). 그러므로 성도들은 바로 '지금'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 고후 6:2).
  2)  전하시는 방법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그 뜻을 성경을 통해 전하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그리고 구원과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길잡이( 딤후 3:15)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전하십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뜻을 대언하는 영(참조, 계 19:10)으로 성도들의 마음속에 계시면서( 요 14:17) 하나님의 뜻을 게시하십니다 ( 고전 2:10, 11). 그러므로 성도는 구원이 약속되어 있는 성경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안식의 땅인 가나안으로 이끄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2.  불순종의 원인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8절). 강퍅하다는 말은 어떤 일에 대해 고의적으로 무관심하여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즉 이 말은 완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목이 곧은 태도( 대하 36:13 ; 렘 7:26)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거역한 것은 바로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강퍅해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 출 7:2 ; 신 6:16). 이스라엘은 강퍅함과 회개치 않는 완고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롬 2:5)자초하여 쌓은 것입니다.

  3.  불순종의 결과
  1)  상속받을 기업이 없습니다.
  약속과 축복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치 않은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목전에 둔 채, 하나님을 순종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신 1:35-38). 애굽에서 탈출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까지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식과 번영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상속받을 기업이 그 이후로 그들에게는 약속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격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안식과 번영의 축복은 이처럼 아무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이고 고통과 비난이 따른다 해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굳게 믿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만 허락됩니다.

  2)  영원한 파멸을 가져옵니다.
  불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 행위요 하나님의 약속을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었고( 창 3장 ; 롬 1:10-25)그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야 합니다 ( 요 3:3-13). 그럼에도 끝까지 진리에 대해 완고하게 저항하는 자들에겐 영원한 파멸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의 재앙을 겪을 때 높이 달린 구리뱀을 쳐다본 자는 나음을 얻고 끝내 쳐다보지 않은 자들은 영원한 파멸, 즉 죽음에 처해졌던 것처럼( 민 21:4-9) 마음이 강퍅해져 돌이키지 않는 자들의 종말은 파멸뿐입니다 ( 살후 1:8, 9).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확실한 축복을 언약하시듯 불순종하는 자에게도 그 보응을 확실하게 이행하십니다 (수 23:14, 15).

둘째, 광야 40년의 생활을 통한 교훈(9-11)
많은 사람들이 현대를 불신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초정밀 과학, 최첨단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든 의견에 대해 정확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지니신 무한한 경륜에 비할 때 인간이 지닌 지식은 지극히 얄팍하고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교만에 빠져버린 인간들은 자기 존재이 본질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학문과 과학 기술로 하나님의 실체까지 연구·분석하려 듭니다. 결국 자기 한계를 깨닫지 못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실존을 부정하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딜레미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했던 이스라엘이 받은 징책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믿음 없는 이 세대를 향한 경고와 교훈이기도 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가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역사가 주는 교훈
  1)  영원한 번영과 안식을 약속받았던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특별한 은총을 입고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시조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으며, 그와 그 후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단지 한 민족의 국사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역사로 공유되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깊숙이 개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과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체험입니다. 따라서 많은 성도들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힘을 얻고 교훈을 발견합니다. 더욱이 이토록 큰 은혜를 입었던 이스라엘이 뭇 민족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소한 족속이었다는 사실은 약육 강식이 일반적 진리로 통용되는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밀리고 압박당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한 번영과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아울러 당신께 패역했을 대 당하게 될 고난과 멸망도 경고하셨습니다. 이 축복의 언약과 멸망의 경고는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당신의 말씀이 얼마나 신실한가를 명확히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자는 이스라엘에게 약속되었던 번영과 영원한 안식을 그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2)  고난으로 점철된 이스라엘의 역사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사랑과 축복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온갖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번영과 안식을 보장받았던 이스라엘이 주어진 축복조차 누리지 못하고 격동과 파란의 역사를 살아왔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이 겪었던 고난들이 어디서 기이니된 것인가를 명료하게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언약을 상실하게 된 것은 바로 불신앙 때문입니다 ( 마 8:10-12). 시 97:8-11을 인용한 본문 말씀은 불신앙으로 인해 언약의 실현을 유보당한 이스라엘 역사의 단면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출되는 은혜를 체험하고도 당신을 불신하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40년간 광야를 유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불신앙에서 돌이키지 못한 자들은 언약의 땅에 들어가 안식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참조, 민 14장). 이 역사적 사건은 믿음 없는 세대는 결코 하나님이 언약하신 영원한 안식의 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좋은 교훈입니다.

  2.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길
  1)  회개
  흉악한 죄인의 생명까지도 귀히 여기시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 겔 18:31, 32 ; 33:10-20). 그래서 하나님은 극도로 패역한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도 영원히 살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끊임없이 경고와 교훈을 들려주십니다. 오늘 우리 세대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하나님을 멸시하고 부인하던 교만을 버리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을 영원한 안식처에 영접해 들이실 것입니다.
  2)  온전한 믿음
  하나님은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하실 때에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를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매개 수단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지 못한 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지만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이 없어 한 세대가 멸망한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이 시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는 사람만이 영원한 안식처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셋째, 왜 실패하는가?(15-19)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걸어서 삼 일이면 족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함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을 광야에서 방황했으며, 가나안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을 광야에서 방황했으면서도 그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불순종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애굽 땅, 그들이 종 되었던 땅에서 인도해 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하나님께 대적했으며 하나님의 대리자였던 모세에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받은 땅을 목전에 두고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문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와 오늘날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
  '성경에 일렀으되…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여기서 저자는 구약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범죄상을 말합니다. 즉 '성경'은 시 95:8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민 20장에 나오는 사건을 시편 기자가 회고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모세의 인도로 탈출한 후에 하나님이 택한 성민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땅에서 살 백성으로서 적합하도록 연단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으며, 많은 시험을 받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적과 기사를 행하심으로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도록 인도하며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연단을 이겨내지 못했고 언제나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대적했습니다 ( 출 14:7 ; 16:3).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은 그들이 신 광야, 곧 므리바에 이르렀을 때에 극에 달하였습니다. 즉 '므리바'라고 하는 말이 '싸우다', '다투다'에서 연유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심히 대적했던 것입니다 (참조, 민 20:3). 물론 광야 생활에서 물이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필요했음을 감안해서 그들의 원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시시때때로 먹이시고 입히시며,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셨을 분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음을 볼 때( 출 16, 17장 ; 민 11:4-6), 그들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저버리는 행위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행위였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가리우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2.  범죄의 결과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함으로 그들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자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40년간 고생으로 점철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범죄의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의 길로 몰아넣었고, 솔로몬의 불순종은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갈라 놓았으며, 2천여 년 전 유대 민족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결과를 초래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순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 삼상 15:22).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아무리 많은 제사와 예배를 드린다 하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성도의 태도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15절). 오늘을 사는 성도들도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역적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영적 이스라엘이며, 세상 생활은 육적 이스라엘 백성이 감당해야 했던 광야 생활과 같습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성도들을 향해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지를 밝히 말해 줍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광야 생활은 하루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서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따라서 그 순례의 길 도중에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물이나 먹을 것이 없어서 당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시련이나 공포보다 더 큰 시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성도들은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불순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당대에 그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다 해서 실망하거나 불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순종했고 어려움이 있을수록 바른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4.불순종은 주의 진노를 초래합니다.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17절). 이 구절에서 '범죄'란 단어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뒤 광야 생활 40년 기간 동안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시험했던 일을 가리킵니다 (8, 9절). 또한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라는 표현은 출애굽 때에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기는 했지만 의심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의 땅을 얻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이들이 죽은 이유는 범죄, 곧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명백합니다. 이들의 불순종은 곧 불신앙에서 나타난 결과였는데 이 불신앙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악행이요, 필연적으로 주님의 분노를 초래케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들은 불신앙이 곧 불순종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만을 두려워했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거대한 인종들을 보고도 낙심치 않았을 것이며, 골리앗의 허풍 앞에서 오히려 담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 곧 사울이나 아합, 그리고 시대의 유대인들은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나 불순종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심해야만 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주님께 순복하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것은 주님을 두 번 기만하는 행위요 더욱 엄청난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5.  순종하는 자만이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18절). 성경에서는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이 종종 믿지 않았다는 의미로 통용되곤 합니다 (참조, 신 30:20 ; 갈 5:7). 따라서 순종한다는 것은 곧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안식이 후에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종말론적인 안식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이는 현세적인 안식도 의미합니다. 실제로 노아는 순종함으로 멸망당하지 않았고, 출애굽 직전의 히브리 백성들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장자의 죽음을 면했습니다. 엘리야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뭄 동안에도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바로 이런 내용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안목에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은 때때로 너무도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수에게 자선을 베풀고 자기를 폭행한 자에게 뺨을 내밀고 옷까지 주라는 명령은 너무나 황당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과 위로, 평안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신을 주님 앞에 완전히 드리지도 못하면서 주님의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기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주님의 능력과 공급, 위로, 안식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6.  믿음은 순종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주님의 택함을 받은 유일한 민족이라고 자부하기는 했어도 그러한 긍지에 상응하는 순종은 없었습니다. 이 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가나안 입성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입니다. 믿음의 자손이라고, 많은 기적을 체험했다고 하여 신앙의 전부를 이룬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바로 그런 내용을 갖고 으시대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성도들은 쉬운 명령, 남들이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그런 명령에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자기의 양심을 가장 예리하게 찌르는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참된 믿음의 실천이요 참된 순종입니다. 그런 순종의 실천이 있을 때에 이 사회는 더욱 맑아질 것이며, 지금의 혼탁한 부분들이 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성도들은 순종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하여 기도를 그만두거나 싱앙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자기 손해이다. 주님은 결코 그런 완악한 마음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2. 오늘날의 교회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례가 발견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조건을 내세우며 기도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복을 주시면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면 한다 등의 조건을 내세워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불경이다
3. 권면은 비난과 다르다. 요즈음 교회 안에는 권면이 아닌 비난만이 난무하다. 형제를 향한 참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성실한 권면이 요청된다.
4. 성도는 믿음과 말씀의 행함이 병행되어야 함을 명심하고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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