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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믿음의 선한 싸움

songgang 2014.08.09 21:43 Views : 597 Recommend:34



http://www.kchurchofchrist.com/pdf/081014.pdf믿음의 선한 싸움
딤전 6:11-20

        성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함을 디모데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1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디모데에게 간절한 부탁을 할 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업을 맡은 자 임을 인식시켜 주고자 할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디모데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크신 사역을 맡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11,12)

1.        하나님의 사람의 특권

A.        구약성경
        구약은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였으며
      1) 하나님이 주신 권한으로 축복권이 있습니다. ( 신 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 말씀을 선포하는 특권이 있습니다.(삼상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3) 중보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및 무명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란 칭호를 사용했습니다(왕상 17:18 ; 왕하 4:7 ; 삼상 2:27).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적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B.        신약성경
       1) 중보적 역활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딤전 2:5)
       2) 그 권한을 성도들에게 주셨다.(마태복음 28:18-20)
바울은 디모데를 칭함에 있어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렀으며 동역자, 형제, 하나님의 일꾼, 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누릴 특권을 전제로 한 칭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나님의 특별하신 가호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의 대리자를 가리켜 말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에서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들이 소수의 민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있는 강대국들의 압박을 극복하여 특별한 민족으로 존속해 온 것은 그들의 선민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으로 오늘날도 아랍 강대국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독립을 유지하며 건재하고 있습니다. 선민의식이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의 대상이며, 신탁의 중보자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으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지만 선민의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표현은 오히려 선민의식의 각성과 강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대 로마 시민은 로마인의 긍지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현대의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명과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의 의무

    1) 정도(正道)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이란 칭호에는 그 이름에 부합한 생활이 따른다는 것을 말해 주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의 정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터득하고 또 그 진리를 고이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소명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나름대로 그 사명이 있고, 들에 핀 꽃 한 송이도 그 사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소명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그 소명을 망각하고 산다면 참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소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주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3, 14절)고 했습니다. 디모데의 지킬 명령이 곧 우리가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주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의 사명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이며, 그 중중보자입니다. 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신인(神人)으로서 그는 절대적인 하나님은 그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사람들은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절대적인 중보자는 될 수 없지만 넓은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중보자가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을 보좌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대하실 때 중보자를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대변자로 활약했으며, 제사장은 죄사함의 중보자로, 왕은 통치의 중보자로 활약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절대적인 중보가 되셨고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중보자의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이 건전하고 생활이 경건하며 봉사에 충실할 때 그 나라는 복을 받고, 교회가 타락하여 분열과 사리사욕에 빠질 때 그 사회는 혼란과 역경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도들의 중보적 사명은 실로 막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막중한 사명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13,14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존하게 하시는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바울 사도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장엄한 명령을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생기를 주어서 호흡하게 하시고 오늘까지도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이에게 새 생명을 주어 부활케 하신 위대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가치를 올바르게 나타내는 것일까요? 본문은 인간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로마 제국의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은 총독 빌라도 앞에서도 진리에 대하여 담대하게 증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요 18:33-38) 생명 보전에 비겁하지 말고 용감하고 담대하게 진리에 대해 증거할 것을 명령합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핍박은 주님께서 다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이러한 환난을 보상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세상의 모든 부정한 권력자들은 벌벌 떨 것이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13절). 성도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만물을 만드시고 번성케 하신 창조주이시며 인간을 만드시고 생명을 주시고 지금까지 살려 주셨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 살아갈 하나님을 성도는 한시라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늘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세상 어떤 것들도 감히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21)고 하셨습니다. 즉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썩어짐의 종 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스럽게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했으니 우리는 더욱 썩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촌각이라도 하나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늘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고 능력을 공급받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성도가 사는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것을 잊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요 가장 큰 불신앙의 죄입니다. 성도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2. 예수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거대한 로마 제국의 권력을 힘입어 인간의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빌라도 앞에서 담대하게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신 것같이 우리도 담대하게 그분의 고백을 증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방법입니다. 예수께서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빌라도가 묻자 '네 말이 옳도다'(눅 23:3)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증거하신 이 '예수님은 왕이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담대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우리를 통치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크리스찬의 참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왕의 몸으로도 고난받으셨음을 우리는 기억하며 예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뒤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쳐 있는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향해 넘어지고 채찍에 맞으면서 걸어가셨습니다. 걸어가신 발자국마다 핏방울이 고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고통보다는 가볍습니다. 그러므로 괴로울 때 주님을 생각하고 그의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용감하게 현실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4절)고 엄한 명령을 디모데에게 합니다. 우리는 이 말이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우리의 생활과 하는 일들이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합당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갈 1:10).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책망받을 것이 없이 인정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오셔서 우리의 신앙을 평가하실 것이며 우리의 믿음과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같이 예수를 기다리다 제풀에 지쳐 천국 잔치에 참예치 못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재림의 시기를 알리지 않으신 것은 우리 신앙의 나태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그리스도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재림을 맞을 준비가 클수록 우리의 기쁨도 클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15,16)
13, 14절에서 말한 바울의 명령을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할 이유가 본문 15절 상반의 '기약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신다'는 것이라면, 15절 하반에서 16절까지는 이 약속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를 하나님의 여러 속성들을 제시하면서 보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분석에 의해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지켜야 하는 것은 그의 재림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재림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수고는 헛된 것이 됩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신자들의 소망이 이생에 국한된다면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고전 5:19). 물론 이 말씀은 성도들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지만 이 부활은 주님의 재림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의 복음을 전파하고 이로인해 고통과 고난을 감수하는 것은 모두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다시 나타나시리라는 것은 우리들이 순교하기까지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파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귀한 약속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로마의 혹독한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다는 종말론적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들이 얼마나 죽음을 겁내지 않고 순교를 각오했는지는 당시의 한 예화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로마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죽기를 각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알아보게 했더니 바로 순교한다는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보고를 듣고 그 다음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을 더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죽이지는 않고 감옥에 오래 가두거나 유배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 재림의 약속을 기다리는 자는 당장의 물리적 축복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흔히 현대 교회의 강단에서는 교인들로 하여금 더욱 충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하여 주님의 재림보다도 현생의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게 됩니다. 물론 주님의 명령에 충실할 때 이 세상의 필요한 것들도 축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성경의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을 바라고 충성한다고 하면 이런 신앙의 수고는 마치 모래 위에 쌓은 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물질적 축복을 바라는 신앙은 이미 그 시작부터가 현세로 국한되므로 그 현세의 조건이 충족되면 하나님까지도 버릴 위험스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충성은 주님을 위해 죽는다면 자기가 바라던 현세의 축복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므로 결코 죽기까지 충성할 수가 없는 제한적이고 이기적인 충성이 될 뿐입니다.

2. 재림의 약속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사건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복되시며, 한 분이시고, 만왕의 왕이며, 죽지 않으시고, 가까이 갈 수 없는 분 등으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 이 표현들은 모두가 재림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불변성과 신실성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즉 이런 분이 약속하신 것이 얼마나 그 확실성을 가졌는가를 나타내고자 의도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로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재림의 약속을 믿고 신앙을 지켰으나 점차 재림이 그들의 생각대로 속히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교회의 여러 곳에서는 재림의 문자적 성취를 불신하고(벧후 3:9) 하나의 비유나 상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재림을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의미하는 비유나 죽은 후 영혼이 천당에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현대 신학자들의 재림에 대한 철학적 견해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온 것들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재림이 상징으로 비유된 곳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으며 주의 재림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으로 믿으며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의 재림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보증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자는 부끄러움과 낭패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약속을 단 한번도 파기하신 일이 없습니다.

넷째, 하늘을 향하여 사는 삶(17-19)

1. 세속에 소망을 두지 말라(17)
        내가 이세상의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 마음을 높이지 말아라
        딤전 6:8-10 부하려는 자들에게 훈계를 했던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낼 당시의 부자들에게 훈계를 합니다. 에베소는 당시 아시아 주의 수도로 상업이 성하여 부자가 많았기에 교회내에서도 부유한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돈이 많다고 해서 잘났다거나 중요한 줄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부자가 내일의 가난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재물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가지자는 교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부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에 소망을 두어서는 않됩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없다가도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눅12:13-21)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보다 눈에 보이는 돈의 위력과 필요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재물의 원 주인이 누구이며 또한 어떤 것이 더 소중하며 영원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3) 하나님께 마음을 두어야
        정직한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시84:1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비취주시는 해요 방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누루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십니다.(눅6:38) 주는 자에게 주시고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헤하리는 그 헤아림으로 도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2. 선행에 부자가 되라(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 선행에 부자가 되어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엡2:10)
           그리스도의 대속은 우리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
           (딛2:14)
            우리를 대신하여 지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 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선한 일을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합니다.(딛3:8)

        2) 나눠 주기를 좋아하라
           하나님이 좋아 하시기 때문이다.(히13:16
           주님께서 명하셨다.(눅18:22
           성령이 충만되었을 때 한일이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행2:42-45)

        3) 동정하는 자가 되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눅10:33-34
           약한 사람을 도우라(행20:35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고 주님이
           하셨기 때문
           성경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였기 때문입니다.(롬15:26)

3. 장래의 터를 닦으라(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찹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1) 장래를 위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마6:20)
   하나님께 대한 헌신
           풍요로운 마음
           하늘을 향하여 사는 삶

        2) 좋은 터를 쌓아라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마7:24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 터를 닦는것(고전 3:10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친히 높여주신 우리들의 신분을 새롭게 깨닫고  그 신분에 맞게 하나님의 명령을 점 없고 책망 받을 일이 없도록 철저히 지켜 나가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를 어떤 신분으로 높여주셨습니까? 우리들을 옛날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에게 붙여지는 하나님의 사람이란 칭호를 받은 신분입니다. 우리의 족보는 하나님의 족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신분과 족보를 높여주셨으니 그분의 명령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피하고 예수님을 닮기 위해 모든 면에서 의롭고, 경건을 유지하며,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갖고 내 이웃을 사랑하며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참고 부드러운 마음을 품으며 매일 부딪히는 마귀와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겨내며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을 잘 지켜 영원히 사는 소망을 가지고 신앙 행진을 전진해 나가라는 교훈입니다.

둘째는 물질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진리입니다.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또 물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정함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물질 때문에 혹시나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 물질이 자기 것도 아니오  또 늘 있을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물질을 맡겨 주신 이유가 점점 높이 쌓아 두라고 맡기신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라고 맡겨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물질에 대해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디에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찾아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쓸 곳에 썼다면 또 마땅히 쓸곳에 쓰도록 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쌓아둔 물질을 너무 의지하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양이 줄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더 넓은 의미로 보자면 꼭 물질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 때문에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의 은사를 내 이웃의 필요한 자에게 나눌 줄 아는 겸손한 자들이 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것을 성실하게 활용하는 것이 바로 하늘 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는 일이 되어 우리의 영생의 삶을 위한 터를 튼튼히 해나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진리만을 택하고 세상이 좋아하는 교파의 이론이나 풍습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싸인이 있는 말씀만을 취하고 사람이 싸인한 말씀을 버릴 줄 아는 충실한 교인들이 되셔야 합니다. 비록 내 취미에는 맞더라도 성경에 없는 것을 따르는 어리석은 믿음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수의 횡포에 의해 다수가 행하고 있는 것이 진짜인 것 같이 보이겠지만 주님 오실 때에는 확연히 판정될 것입니다. 모든 판정은 기록된 성경에 의해서 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늘 성경과 대조하여 성경에 있는 것이면 취하고 성경에 없는 것이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인정한다하거나 세상 사람 모두가 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버릴 줄 아는 지혜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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