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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하나님의 영원성과 인생의 무상함

Admin 2014.12.07 20:54 Views : 840 Recommend:39



http://www.kchurchofchrist.com/pdf/120714.pdf하나님의 영원성과 인생의 무상함
God’s eternity and Vanity of Life
上帝的永恒和生命的虚荣

시편 90;1-12  
본 시편 90편은 시편 150편중 유일하게 모세가 지은 시입니다.  이 밖에도 출애굽기 15:1-18 과 신명기 32:1-43 두 편의 시가 있고 또한 모세오경이라고 하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들을 모세가 썼습니다.
   성경 66권을 2 부분으로 나눕니다. 구약과 신약 입니다. 율법과 복음입니다.  유명한 사람을 본다면 창세기에 나온 아담과 로마서 5장에서 처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처음 아담을 사는 영이요, 나중 예수는 살리는 영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는 모세와 예수님과 비교를 해서 모세는 하나님집 맡은 사환으로 수고하였지만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 맡은 자의 아들로 살았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율법을 주신 위대한 분으로 보고있습니다.
오늘 시편 90편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모세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과연 모세는 어떤 사람입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18세에 팔렸지만 애굽에 총리가 되어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그곳에서 70명이 들어가 하늘에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자손이 번성하자 애굽의 바로왕과 백성들이 두려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칙령을 발하기를 히브리인들이 아들을 낳으면 모두 죽이라고 산파들에게 명하였을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3개월 동안 모르게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바로왕의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목욕하기 위해 시내로 나왔을 때 갈 상자에 담아 그 앞으로 물에 띠웠다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은 공주는 그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의 아들로 키워 40살 까지 애굽의 천문, 애굽의 모든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였졌습니다.(행7:22) 이때에 자기 백성 히브리인들을 돌아볼 생각이 들때  당시에 국고성을 짓는데 고역을 하고 있는 히브리들을 괴롭히는 애굽사람을 처 죽인 이유로 더 이상 궁에 살지 못하고 광야를 도망가 미디안에서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자녀들을 낳으면서 광야생활 목동의 생활을 40년 세월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에서 간역으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라 명하셨을 때 4번이나 거역하였으나 결국 부름에 응하여 이스라엘 지도자로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40년을 지내다가 120세가 되어 약속된 땅을 보면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A.        하나님의 영원성
모세는 이 시편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성과 인생의 무상함을 비교 하면서 덧없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세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능력까지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모세만큼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문제를 말해 줄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시간
1)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한 시간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다(2절)”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은 시간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요 동시에 공간적으로도 초월하여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 라 하였습니다.(출3:14)
하나님은 무엇으로부터 연유된 존재가 아니라 홀로 계시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 과 공간을 지배하실 수 있는 분으로서 영원안에 숨어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다만 생각하고 믿음뿐입니다. 믿음이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수용하는 것이며 영원 안에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2)        창조의 시간
영원 속에 계시던 하난미이 시간 속에서 일하시기 시작한 것이 창조의 사역입니다. 태초는 영원에서 기산을 분리해 닌 때이며, 모든 창조의 기점입니다. 그래서 태초는 영원과 시간의 만남입니다. 창조 기간의 시간은 태초의 시간으로 제4일에 창조한 큰광명 작은 광명, 별들에 의해 생긴 천체의 공전이나 자전에 의한 시간과는 구분이 됩니다.
산, 땅, 세계, 인생의 창조 이전은 영원이며, 그 후는 시간의 세계에 속합니다.

2.        피조물의 시간
1)        피조물의 시간은 단절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한 시간인데 비하여 피조물 시간은 단절의 시간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끝으로 단절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단절됩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3절) 인생은 왔다가 돌아가야 합니다. 영원에셔 시간으로 왔다가 다시 영원으로 돌라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영원에서 시간으로 올때는 영원에서 단절되고, 다시 영원으로 돌아갈 때는 시간에서 단절됩니다. 인생은 단절로 시작되고 단절로 끝이 나는 것이 피조물의 시간입니다.

2)        피조물의 시간은 변화됩니다(3)
시간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변화합니다. 과거는 현재에게 밀려남으로써 변화되고, 현재는 미래를 물려받음으로써 변화됩니다. 피조물의 시간은 항상 생성하고 소멸합니다. 그 변화의 목적은 근원으로 돌아가는데 있습니다. 근원은 영원입니다.

3.        하나님의 시간안에 있는 피조물의 시간
1)        창조의 시간과 종말의 시간(3)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3) 날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전 3:2) 그 사이에 있는 사는 동안은 피조물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2)        영원안에 승화되는 인간의 시간(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입니다.(4절)” 하나님 에게는 천년은 밤의 한 경점 같다고 합니다. 천년과 찰라가 동일한 시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과 접촉되므로 가능합니다.
인간의 시간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만나는 때 이루어 집니다. 그것이 바로 승화되는 시간이며 구원 받는 시간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시간안에 살면서도 영원에서 사는 것이며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사는 것입니다.

B.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짧고 무상한가 (시편90:5-9)
모세가 본문에서 인생이 밤의 한 경점 같이 잠간 자는 것 같이 아침에 돋는 풀같이 살다가 소멸된다는 슬푼 애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1.        우리 인간은 순간으로의 시간에 삽니다.
1)        찰라로의 시간
인생이 사는 날이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렸다는 뜻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현재 뿐이며 과거와 미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시간입니다. 공간은 정적이지만 시간은 동적입니다.

2)        신비로의 시간
시간은 움직일때 시간입니다. 정지된 시간은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아닙니다. 인간의 시간이 정지될 때는 이 세상에서 초월할 때 입니다. 이 초월은 하나님의 만남에서 이루어지고 계시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계시된 시간은 정지된 시간이요, 정지된 시간은 초월된 시간입니다. 초월된 시간은 영원한 시간입니다. 정지된 시간에서 이루어진 일은 영원하고 움직이는 시간에서 이루어진 일은 소멸합니다.

2.        우리 인간은 소멸의 시간안에 살고 있습니다.
1)        심판으로의 시간
인간의 일생은 심판을 준비하는 시간이며 심판은 생명의 값에 대한 책임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피할 수 없습니다. 심판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 사는 사람은 이 심판을 극복합니다.(요5:22-24, 12:48)

2)        죽음으로의 시간
“7절에서 주의 노에 소멸된다고 하였는데 소멸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을 소유하지 않는 한 죽음은 영원한 고통의 삶입니다.

3)        수고와 슬픔으로서의 인생을 사는 시간(10-12)
시편 기자는 우리 인생이 들의 풀과 같이 속히 말라버릴뿐만 아니라 그 짧은 삶이 수고와 슬픔으로 채워져 있음을 말해 줍니다. 본문은 단명하고 신속한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가를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C.        인생이  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지혜

1.        자기 삶에 대한 올바른 평가하는 지혜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말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인생을 극복하는 길은 모세가 말하기를 주의 진노를 아는데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죄 가운데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데서부터 자기 삶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를 깨달은 자는 이에 대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 말합니다.

2.        명령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게에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12)”
인생의 날을 계수한다는 것은 날을 센다는 뜻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수명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지혜라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는 삶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사는 삶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영원한 생명을 위해 투자하는 삶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요 하지 말라고 하면 그대로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5:42-45)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니라(디모데후서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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