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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세레

유아세례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사도행전 16장에 있는 루디아와 그의 온 집안 식구들이 세례받은 것을 통해 유아에게도 세례가 베풀어졌다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내 세우는 이론을 보면 루디아는 결혼한 여자로서 그의 가족중엔 유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을때에 그 유아도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세례는 아무에게나 베푸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믿고 회개하여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한자에게 베푸는 것이다. 믿음, 회개, 고백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측이 아닐까 한다. 세례의 선행 조건에는 반드시 믿음과 회개가 있어야 한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그의 가족과 더불어 세례를 받았다고 한 사도행전 18:8절을 인용해서 이 집에서도 유아가 세례를 받았을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추측을 갖고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 18:8절을 정독해보면 회당 장 그리스보가 그의 온 가족과 더불어 주를 믿었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를 믿었다고 함은 이들이 최소한 바른 이성을 갖고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만큼 성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빌립보 간수들(행16:19-34)의 예를 들어서 유아들도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나 여기에도 보면 그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바울과 실라는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했었고(32절) 그 말씀을 들은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음으로 크게 기뻐했다고 했다(34절)

혹자는 말하기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기를 이스라엘 집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 할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부터는 난지 8일 만에 남자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라고 하였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할례문제는 부모의 의무였는데 비해 세례는 개인적인 의무이므로 할례에서 유례했다고 보고 있지 않으며, 할례는 남자들만 시행하라고 하였는데 비해(창17:14) 세례는 남녀 할 것없이 누구나 믿는 자에게 베풀라고 명령되어졌고(마28:19 막16:15,16), 할례는 구약성경에 명령되어 있지만 유아세례는 신약성경에 명령된바 없다.

둘째로, 원죄문제를 말하면서 아담의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가 있으므로 그 죄를 갖고는 천국에 갈 수 없으므로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원죄에서 해방할 수 있다고 하여 주장하는 자도 있다.
원죄 문제는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그 죄의 댓가를 받았다. 죽음이란 것과 수고하고 일하여야 하는 것, 여자에게는 아이 낳는 고통을 더해 주셨고.. .
그러므로 원죄가 유전 된다고 하는 사실이 이론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죽는 것 그 결과의 유전이지 죄의 유전이 아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아비 죄는 아비가 감당하고 자식까지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찌하여 죄가 유전한다고 할까?
시편 127편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하였다. 태의 열매는 상급이라고 하였는데 상급을 죄를 갖은 자를 상급으로 주셨단 말인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를 세우시면서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리스도나 그의 사도들이 가르치거나 명령한 적도 없는 종교의식을 만들어 냈다. 진정한 교회란 성서에서 가르치는 것을 말하고 성서에서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하여 서는 침묵을 지켜야 하지 않을 까?

참고로 신학자들이 말하는 내용 몇 가지만 적어본다.
“신약성서는 사도시대에 유아세례가 행해졌단 기록은 분명히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영국 리치몬드의 웨슬레 신학교 조직신학교수인 베트의 말)

“ 유아세례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마땅히 베푸러야한다는 것은 신앙의 한요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성서를 살펴봐도 유아세례를 권장하는 말씀은 한마디도 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종교의식을 사도나 그리스도가 말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논리적 사변에 의해서 정당화시킨다.” ( 알버트 브렛드 : 감리교인)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전에 먼저 전도할 것을 분부하신 것이 신자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마치 세례를 신앙의 선행 조건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존 칼빈:장로교 창시자) 또한 그는 세례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종교를 증거하는 하나의 깃발이다.. . .
또한 그는 세례를 할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그는 그의 저저 기독교강요에서 세례와 할례의 차이는 외형적이 의식만 다를 분 동일하다. 외형적인 의식은 극히 적다. 약속의 말씀과 거기에 나타나 있는 성질 자체가 큰 것이기 때문에 할례애 대해 말씀하신 것은 곧 세례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확정해도 좋다. 할례가 세례의 위치를 계승하고 우리에게 동일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김문제역 4권 523,524페이지)

“유아세례는 신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사도들은 이러한 의식을 베푼 적도 없다. 그러나 이것을 후기 사도시대에 와서 점차로 교회의 형식적 예절과 교회가 복잡해져감에 따라서 생겨난 하나의 제도이다. 시피안이 유아세례를 주장하긴 했으나 분명히 터트리안 이전에는 그것이 베풀어진 흔적이 없다. 어거스틴 시대가 지나서부터 유아세례가 보편화 된 것이다.”( 사도행전 주석 312페이지)
(하인리히 아구스트: 독일 루터교도)

“세례가 처움에는 성인들에게 베풀어졌다. 성인은 엄격한 의미에서 세례와 신앙을 이해 할 수가 있다( 아구스트 윌레름 미안더 ; 루터교 역사가이며 유명한 교회사가; 교회사 1권 424페이지)

그럼 언제 유아세례를 베풀기 시작하였을 까?
이를 알아 맞추기란 어렵다. 2세기까지는 물 뿌리는 세례가 시행되지 않았고 대부분 교회들이 6-7세기까지 침례를 행했던 것을 볼 수 있다. 5세기 이후에는 성인의 세례는 점점 사라지고 유아세례가 일반적으로 시행되었다(lion사 송광택역 교회핸드북에서)

유아세례를 인장하지 않는 이유:
세례를 주어야 하는 이유중에
1) 첫째 말씀을 듣어야 한다(롬10:17) 그런데 아이들은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까? 둘째, 그럼 믿어야 한다(행2:38) 아이들이 들을 수 있다고 하더래도 믿을 수 있을 까?
셋째, 회개하여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뭐가 잘, 잘못인지 알고 회개할 수 있을 까?
넷째, 고백해야 한다.(마16:16)

의문: 현재 유아세례를 부모들이 아이들의 믿음을 책이지고 준다고 하는데 과연 부모가 책임을 질 수 있을 까?
구원이란 개인구원인데 가족 구원으로 가능할 까? 역으로 가족에서 한사람만 잘믿으면 온 가족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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