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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글

Admin 2017.02.13 23:04 조회 수 : 373 추천:7


Doug Lee
2월 10일 오후 1:36

교회가 그리스도의 어떤 가르침들을 지켜내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대한 일입니다. 19세기 미국,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크리스천들이 애를 썼지만 흑인들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이 흑인들은 산업의 발전을 위해 부려야만 하는 노예(Slave)일 뿐 인권이 주어질 수 없는 종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농장주들에게 성경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 노예를 인정하는 좋은 법과 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꼭 같은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도자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당시의 “산업을 위해서” 보다는 말씀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그러려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라는 가르침을 가벼이 여길 수 없었죠. 갈라디아의 말씀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주안에서 하나다라고 선언하고 있고 고린도전서에도 “그들이 종이라도 주께 속할 때 자유인(고전 7:20-24)”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말씀의 충실”한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말씀의 실천을 보여주었습니다. 발톤 스톤은 1800년 이전 이미 노예제도는 “이를 교회의 특권으로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악(evil)이며 매우 극악무도(heinous)하고 결과적으로 배타적(exclude)이기에 충분하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유산으로 받은 노예들을 놓아주려 했지만 살고 있던 켄터키 주州법에 의해 가능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가능한 일리노이 주州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1834년 9월 이들을 놓아주고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 줍니다. 당시 건장한 18세 노예의 값은 $650인데 (현재의 가치 $18,200/ 한화 2,000만원)이고 5년정도 지나 청년이 되면 당시 $1,000불 (현재 $28,000/ 한화 3,200만원)이었지만 경제적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고 결국 그는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여 실천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미동북부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방문하다 보면 흑인들만의 교회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역사적 이유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KCU가 설립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워싱턴 DC 소재 “16가와 디카투어 그리스도의교회”도 이와 같은 구성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에게 선구자들의 자랑스러운 말씀 실천의 유산은 아전인수식 성경 해석(eisegesis)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그것의 이해득실과 상관없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실천을 요구합니다.
21세기 오늘 노동자와 경영자, 임명자와 임면권자, 평신도와 목회자 따위의 편가르기와 차별로 주님 말씀에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마음 구석구석을 살피며 주님의 가르침을 진솔히 지켜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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