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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교회란?

admin 2017.03.25 06:07 조회 수 : 2

Doug Lee

March 15 at 12:42pm

바톤 스톤(Barton W. Stone)은 미국 대각성 운동의 한 주체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종교의 자유성을 강조한 첫 대각성의 바람이 지나간 1790년대 교회적으로는 보편주의(Unitarian Universalists)와 이신주의(Deists)들이 득세하였고 사회적으로는 문란하였습니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교인수는 감소세에 있었습니다. 1798년 열린 장로회 총회에서는 금식, 겸손, 기도를 선포했습니다. 교회의 의사록에는 알콜중독자, 신성모독자, 노예혹사자, 그리고 성적 문란자들에 대한 출교를 기록할 만큼 교회 조차도 혼탁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위해 더 이상의 죄악이 그쳐져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 시기를 애굽 흑암기(Egyptian Darkness)라고 불렀습니다.

켄터키를 여행하던 제임스 스미스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악으로부터도 선을 이끌어 내시리라, 지금은 비록 모호하게 보이는 성경 기독교(scriptural religion)의 영광이 앞으로 배나 빛나리라 믿는다.” 1800년 6월 로건 카운티의 연례 영성체 (annual Communion)에서의 맥그레이디의 설교는 매우 강렬하여 수천의 사람들이 말씀 앞에 고꾸라졌고 -입신과 같은- 그 소식은 확산되었습니다.

이를 목도한 스톤은 이 사건에 제압당하여 여행에서 돌아옵니다. 당시 그는 켄터키 케인 리지(Cane Ridge)에서 콩코드와 케인리지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습니다. “나에게 그 광경은 새롭고 낯선 것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누운 것 같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꾸라졌고, 수 시간 동안을 숨도 쉬지 않고 움직임도 없는 - 때로 깊은 한숨을 쉬기도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생명 부흥의 징후 순간들과 함께 – 시간이 지속되었습니다.” “경이로움과 함께 나는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을 선포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케인리지교회에 자신을 경험을 이야기할 때 교회는 “지극히 엄숙함으로 감동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울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저녁 콩고드교회에서는 설교를 들은 두명의 소녀가 기절을 하였습니다.

짧은 부흥 체험이 그의 교회에 뒤따르자 스톤은 1801년 8월 첫 주말에 연례 영성체를 케인 리지에서 열기로 계획합니다. 집회로 모인 모임 가운데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집회는 예정된 나흘이 지나 일주일 간 계속되었고 스톤을 포함한 18명의 장로교회 목회자들과 감리교, 침례교 목회자가 함께 하였으며 케인 리지 교회 앞에 텐트를 치고 이 집회에 참여한 사람의 수는 20,000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당시 켄터키주 전체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인원이었습니다. 이에 더해 체험자가 1천에서 3천여명이고 회심하고 돌아온 사람들도 3천여명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두 번째 대각성 운동에서 크게 강조된 것은 금욕, 해방, 여권(여성의 권리)이었습니다. 스톤이 지나친 음주와 노예들에 대한 혹사, 여성 무시로부터 벗어나 말씀으로 회개하고 새롭게 부흥되며 미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의 주역이 되게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 노예 해방 문제는 먼저 올린 글을 참조하면 좋겠습니다. -

21세기 캠벨의 영향아래 있던 그리스도의 교회가 당시 혼탁한 세상과 함께 흑암기에 있던 교회에게 회개와 부흥의 기회를 준비하고 마련한 바톤 스톤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교회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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