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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한 가정 (One Family)

songgang 2013.11.08 17:40 Views : 493 Recommend:37

한가정(ONE FAMILY)
엡 4:1-17
        가정이란부모를 중심하여, 그 자녀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에 있어서의 가장 작은 집단입니다.
가정으로 역된 히브리어 [바인드](bayith)의 자의(字義)도 [집](house 家)인데, 문맥상 [가정]으로 역하고 있다(시 113:9).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도 그 뜻이 히브리어와 같은데, 이것도[가정](family)으로 역하고 있다. 가정의 제도(制度)는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것으로서(창1:27-28, 2:18-24, 3:16,  시 68:6), 예수님은 그(the) 가정에 오셨다(마 13:36, 행 10:33, 12:12,딤후 1:5). 가정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은 일부일처 제도를 벗어나는 일이다(창 16:5,21:10-11, 29:30-34). 시편에는 종종 가정의 즐거움이 노래되어 있다(시 127, 128편 등). 예수께서도 가정의 성립을 기뻐하시고(요 2:1-11), 그 자신을 가족 중에서 반대하는 이가 있었으나(마 10:36, 요 7:1-8), 끝까지 가정에 대한 책임을 느껴 십자가상에서 그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다.(요 19:27). 이렇듯 귀한 가정일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며, 주를 따라가는 일과 주의 나라 위해서는 때로 가정도 버려야 할 일이 있음을 주께서는 가르쳐주시고, 또한 몸소 실행하셨다(마 10:35-39, 12:49 기타). 영원히 지켜져야 할 가정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데만이 있기 때문이다(마 12:46-50).
        이러한 가정을 이루어 가려면 우리의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가정은 부르심을 입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일
1. 부르심이란?
[히] [動] ar;q; (qara') [그] [名] klh'si"(kleis), [動] kalevw(kaleo), [形] klhtov"(kletos)
[영] Call, Calling하나님이 사람을 불러내시어, 하나님의 일에 참여케 하는 일. 따라서 죄의 세상에 살고 있던 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에서, 택함받음(택정)과 거의 동의어로 씌어지는 일이 많다. [부르심]이라는 말은 원래 [부르다](창 19:5, 마 10:1), [칭하다](이름하다)(창 1:5, 마 1:21), [청하다](눅 14:16)등의 경우에 씌어져 있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의 길로 부르시고, 혹은 특별한 사명 위해 불러내시는 일을 말한다. 히브리어 동사 [카-라-](창 12:8, 19:5기타),헬라어 동사 [칼레오-](롬 4:17, 8:30 기타), 명사 [클레시스](롬 11:29), 형용사 [클레토스](롬1:1 기타)는 모두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들이다.이러한 구체적인 예로서, 구약에 있어서는, 아브라함(창 12:1-13, 히 11:8), 모세(출  3:4,19:20-〉호 11:1), 이사야(사 6:1-13), 예레미야(렘 1:1-12)등의 경우이고, 신약에 있어서는 12제자(마 4:18-22, 10:1-4), 바울(행 9:1-19, 갈 1:15-17)의 경우 등이 그 전형적인 것으로서 말해진다. 이러한 경우의 부르심의 목적은, 구원과 축복 위해, 또는 특별한 하나님의 일(역사)의 봉사위해서인데, 그 구체적 내용에는 각각 자신(獨自)의 것이 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민의 선조로 되기 위해 부르심을 입었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위해, 바울은 이방인 전도위해 부르신바 되었다. 그리고 특별한 사명을 위한 부르심도 그대로 구원과   축복에의 소명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부르심이라는 말은, 어두움에서의 부르심이고(벧전 2:9), 또 축복(벧전 2:9), 그 나라와 영광(살전 2:12), 그리스도와의 교제(고전 1:9), 자유(갈 5:13), 소망(엡4:4), 화평(고전 7:15), 경건(딤전 4:7)에의 부르심으로 되어 있다. 부르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체적인 뜻(意志)과 일(역사)하심을 나타내고, 성서에 있어서의 구원의 신 중심적(神中心的)인 성질을 명시(明示)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에 기초하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롬 8:30, 9:11-12). 그러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이 크신 은혜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엡 4:1, 살후 1:11).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의 특별한 의미는, 신앙을 전파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씌어지고, 그것은 사도를 의미하며(갈 1:15, 롬 1:1, 고전 1:1, 행 13:2, 16:10), 모든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게 된 때(엡 2:14), 구원의 역사는, 최후의 [마지막 때]로 들어간 것이다(행2:17)

2. 합당하게 행하는 일.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먼저 간절한 권고를 듣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은 간절한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옥에 갇혔고 복음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도요 전도자입니다. 그러한 바울을 권하고 있습니다. 애타는 마음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4:15절에 말하기를 ‘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주안에서 가르치는 선생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한 영혼을  그리스도인으로 출산하는 부모 같은 이는 결코 많지 않습니다. 이 심정은 자녀가 잘 되기를 비는 심정입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고 싶은 심정입니다.(살전 2:8) 진정으로 자녀의 장래를 염려하고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마음입니다.

2)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생활은 겸손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약함과 부지와 한계성을 가진 의존적 존재임을 올바로 자각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주안에서 부름 받은 무한한 은혜와 영광을 동시에 깨닫는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주의 해야 할 일은 사람은 스스로 겸손하다는 생각하지만 교만하다고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벌써 겸손을 잃어버린 순간일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겸손이 참으로 신앙 생활에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미 6:8).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마 11:29).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 57:15). 은혜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벧전 5:6). 지혜를 얻고( 잠 11:2),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약 4:1).
  3) 온유해야 합니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람을 원망하거나 원수 갚으려는 강퍅한 심정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그것을 수용하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는 마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앙 생활에 이것이 중요함을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선행은 지혜의 온유함으로 해야 합니다.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아 줄 때에도 온유한 심정으로 해야 상대방이 받아들입니다(참조, 갈 6:1).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참조, 마 5:5).
  4)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실수를 서로 용납함으로써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이런 사실이( 롬 3:23) 정당화되어 범죄와 실수를 저질러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잘못이 생겼을 때는 서로 바로잡아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서로 용납하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용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이 기본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첫째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참지 않으면, 그것도 오래 참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또 오래 참되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아야 합니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6)
1. 의식적으로 하라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 처움에는 의식적으로 필요에 따라서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부터는 그 일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한다는 말은 나는 생각만 하여도 그 일이 쉽게 된다는 말입니다. 숙달되어 자연스럽게 그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모든 일(운전하는 일,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일)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을 한다는 것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힘써서 합니다.  어떻게 교회생활을 하는 것인가? 찬송은 어떻게 부르는 것인가?  성경은 읽어야 되는 것인가? 기도는 해야 되는가?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등 많은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을 사는 것이 신앙인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1) 하나님을 체험하는 방법
        하나님의 일: 당신의 주위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관계: 하나님은 당신과 개인적이고,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추구하신다
        초청: 하나님은 당신이 그 분의 일에 참여하도록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심: 하나님은 자신과 목적들과 그의 길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성련님에 의해 성경, 기도, 환경과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갈등: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당신을 믿음의 갈등으로 몰아넣고, 결단                        과 그에 따른 행동을 요구합니다.
        조정:당신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해야합니다.
        순종+경험:당신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킴으로 당신은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2. 성도는 부르심   한 소망을 가집니다.
  '몸이 하나니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4 절).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 넷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아 !' 라고 불렀다면 네 아들 중에 어느 아들이 대답하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네 아들 모두가 '예 !' 하고 아버지께로 달려갈 것입니다. 아버지는 네 형제 모두를 낳았고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호하시는 분이시며, 네 형제 모두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형제요 자매 된 성도들은 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신 바 되었고, 따라서 그 부르심에 응답할 의무가 동일하게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의 부르는 음성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정녕 불효 자식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한 형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딴청하는 자는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떼 같은 성도들을 실족치 않게 하시려고 성령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 목전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분열과 시기를 버리고 일치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먼저 희생하는 정신이 요구됩니다(참조, 요 15:12-14).

  3. 일치와 하나 됨은 교회에 대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요 17:11).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한 형제 된 성도들이 분열하는 것은 죄악이요, 그것은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따라서 이제 교회는 더 이상 분열되고 당파를 짓지 말고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는 주님의 명령이요, 주님이 교회를 향하여 지금도 행하시는 간절한 기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 교회의 일치를 거듭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더 많은 분파가 생겼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따르는 실천적 사랑을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장을 버리고 겸손히 주의 말씀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참조, 빌 2:5-8). 따라서 이제 완악함을 버리고 우리는 일치와 하나 됨을 명령하시는 주의 음성을 시행해야 합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셋째, 교회(7-12)
교회는 하나의 조직체입니다. 따라서 교회 내에는 목사나 장로를 비롯해서 교사, 집사, 또는 개별 봉사자 등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직분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세우시고 서로 연합하여 성장하며(참조, 엡 2:22)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주신 직분입니다. 따라서 각 직분자는 은사와 직분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의 성도들은 교회 내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교만의 근거로 삼거나 임무를 등한히 하여 제대로 은혜의 사역을 감당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의 본질을 바로 아는 것은 성도의 인격적 성숙과 교회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임하며,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1. 은혜를 받는 자
  본문에서 말하는 은혜는 11 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교회 공동체 내에서 사도나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기타 봉사자들의 특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은혜를 받을 자는 교회 공동체 내에 소속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교회는 외형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바로 교회의 몸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참조, 엡 5:23). 그래서 본문 8 절은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에게 잡힌 자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를 영접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 받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올바르게 세워야 할 것이며 교회는 세상적 지식이나 재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근거로 교회의 직분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2. 은혜의 특징
  1) 각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7 절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은혜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마땅한 직분의 은혜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가 무엇인지 발견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각 사람'이란 은혜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마더 독특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 앞에서 귀천이 없으며 사도나 목사나 교회의 청소자도 하나님 앞에서 다 성결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내에서 자신의 직분을 자랑해서도 안 되며,  남의 직분을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모두가 자신의 직분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또한 본문은 모든 은혜가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결코 자신의 은혜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랑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리고 그 영광을 취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나 장로, 집사 등의 교회 관리 직분자들은 사람들에 대하여 교만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직분을 허락하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3) 분량대로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주어집니다. 여기서 분량이란 세상적인 재물과 지위의 분량이 아니라 각 사람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향한 '장성한 분량'(13 절)을 의미합니다. 이 장성한 분량은 첫째, 믿음의 분량입니다. '직분' 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직분이므로 믿음으로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십니다. 둘째는 인격의 분량입니다. 우리가 본받을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또한 참된 인격을 갖춘 자만이 은혜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은혜는 인격의 분량 만큼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은혜가 적음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성장시키고 참된 인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은혜의 활용
  1) 하나님 나라를 위해
  결국 '은혜'의 목적은 이 땅 위에 복음을 전하고 공의와 선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들은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항상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전파, 공의와 선한 행위를 세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2)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혜를 주심은 크리스찬은 개인이 아니라 서로 도와 성장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엡 2:22). 따라서 각 사람은 자신의 맡은 바 은혜를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오히려 자신도 더욱 성장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넷째, 교회안에 직분(13,14)
12 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자 들을 세워 주신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도로 하여금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제는 직분자들의 사역이 성도들에게 미친 결과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직분자 들을 통하여 양육 받은 결과가 무엇이냐는 말과도 상통하며 나아가서 넓게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과도 일치한다 하겠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1.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우심을 입은 자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는 우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간단한 한 마디의 말속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의 대상을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에베소 교인들이 섬기는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섬기는 대상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신앙의 대상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믿음과 지식은 서로 무관하며 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또한 많은 신학자들조차도 믿음과 지식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갖지 못한 자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는 없으며, 또 그리스도를 바로 섬기며 믿는 자가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하나님에게 패역한 민족이 된 원인이 무지 때문이라고 하면서(참조, 호 4:6)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번제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급선무라고 호소하였습니다(참조, 호 6:6).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과 아는 지식 가운데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성도의 일치를 가리킵니다. 교회의 각 지체들인 성도들이 교회에서 서로 덕을 세우며 하나 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바른 신앙인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에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그분을 신뢰하는 자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런 자들의 모임만이 진정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2.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이란 충분히 몸과 마음이 성장하여 무슨 일을 하든 실수하지 않는 완전한 인격을 갖춘 성인을 가리킵니다(참조, 고전 2:6 ; 13:11 ; 14:20 ; 히 5:4).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성도들은 완전한 성인이 모든 일을 일사 분란하게 처리해 나가듯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사역을 한 치의 불완전함이나 분쟁 없이 잘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공생에 기간 중에 산상수훈을 통해 천국 백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마 5:48). 믿음과 지식에서 비록 불완전하고 편파적이며 일방적이지만, 그러나 완전한 지식과 믿음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이 땅에 있는 우리 성도에게 주어진 과업인 것입니다.


  3. 장성한 분량에 이르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이 장성한 분량의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온전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냐야 합니다. 어린아이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여 모든 일에 미숙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의 특징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혹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영적으로 미성숙한 자들은 사람의 궤술과 사악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합니다. 에베소뿐만이 아니라 당시에는 어느 곳에서나 거짓 선생들이 거짓 교훈으로 성도들을 미혹에 빠뜨리는 사례들이 흔히 발생하였습니다( 롬 16:17, 18 ; 골 2:18). 그래서 바울은 항상 악한 자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둘째는 요동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들은 유혹을 받을 때 그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므로 요동하여 그 유혹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이는 마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이 유혹에 막혀 결실치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 13:22). 결국 바울은 여기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신앙을 굳건히 하여 거짓 교훈에 대항하고 끝까지 진리를 사수할 것을 당부한다 하겠습니다. 바울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몫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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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교회의 통일성(에베소서4:4-6) Admin 2014.03.06 501
36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에베소서 4:1-12) Admin 2014.03.02 625
35 진짜 기쁨을 잡아라(요15:4-11) Admin 2014.02.23 501
34 하나님의 나라 (요한계시록21:1-7, 10-14,19-23) Admin 2014.02.17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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