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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감사 할 수 있나요?

Admin 2014.07.27 19:28 Views : 549 Recommend:30



감사 할 수 있나요?

시편 127편
오늘은 본 교회 생일 입니다. 생일은 한 생명이 이 세상에 나타난 날 입니다.   본문 시편127편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 형성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귀한 예배당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주신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서로 만남의 시간을 주셔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면서 감사하는 자가 되려면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말이 나올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면 자신도 마음이 기뻐질 것이요 삶의 표현이 달라질 것입니다. 삶의 표현이 달라지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은(살전 5:16-23)
1)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2)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살전4:3)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룩해 집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을 때 거룩해 집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 1:16)
3)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을 믿는 것(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6:40)
        
2.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1)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생각하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 7:17)
2)        내가 일을 하고 난 후 마음에 평강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라
“평안을 내가 네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은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이 아니하니라(요14:27)
3)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않되느냐 살펴보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요7:18)


둘째.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갈라디아서 5:22,23)
1.         자기의 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구하는 행위인 사랑입니다.(Love)
2.        하나님의 뜻을 좇고 성령과 연합하여 사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인 희락(Joy)
3.        마음과 영혼이 평안한 행복이 화평입니다.(Peace)
4.        용서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는 오래참음입니다.(Patience)
5.        남을 돌보는 너그러운 마음이 자비 입니다.(Kindness)
6.        사랑과 의를 겸한 선한 마음상태가 양선입니다.(goodness)
7.        친구를 배반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충성입니다.(faithfulness)
8.        하나님 뜻에 복종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온유요(gentleness)
9.        자기를 극복하고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절제요.(self-control)

셋째, 땅의 일보다 하늘의 일을 추구하라.
1.        땅의 일은
1)        사형에 해당하는 일(롬1:27-32)
2)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일(골 3:5,6)
3)        하나님의 나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일(갈 5:19-21)
4)        땅의 일(고전 5:11)
2.        하늘의 일
1)        위엣 것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골3:1)
2)        우리의 처소(요14:1-3)
3)        하나님의 보좌(요계3:21)
4)        새 사람을 입은 자 (골3:10) 입니다.



넷째,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으십시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매일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추구함으로써 인격 전체가 하나님을 닮는, 즉 성화에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성화되도록 하는 두 가지 요소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세상적인 것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은 그의 능력으로 성도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었으며 또한 죄값으로 모두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 6:23).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인간으로 하여금 사망에 이르도록 내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로써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또한 능력으로 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에만 가능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선택에 인간의 공로나 조건이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인간들은 모두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나 조건이 하나님의 선택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엡 1:5) 하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 공로 없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성도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생명은 죽음의 일시적 유보가 아닌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위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으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즉 당신의 독생자로 하여금 인간을 대신하여 죄값을 지불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고난을 받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우리들 대신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고귀한 생명을 주고 인간에게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엡 1:6)라고 했고, 또한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엡 1:9)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여야 하는 큰 아픔이 동반되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인간 구원을 위해 기쁘게 이 일을 결정하시고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처럼 아픔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입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해 나를 죽이는 것이 사랑의 참모습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사신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성도들의 혈관에 흐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은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으로 불러 주시는 순간부터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생명을 잃지 않도록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합니다. 성도가 생명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자신이 완전하게 되었다거나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며 아직도 이 세상과 육신에 거하고 있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는 날마다 자신의 생명을 성숙시켜 전인격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죄인과 의인을 갈라 각각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참조, 마 25:32, 33).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힘만으로 이 일을 행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말씀'과 '성령'을 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그것을 대하는 성도들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합니다( 딤후 3:16). 그래서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진리의 영'으로서 성도 안에 거하셔서 그 마음을 감동시키고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부패한 심성의 발로를 제어하시고 선하고 거룩한 마음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께 온전히 복종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으며 성령의 거룩하고 풍성한 열매들을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갈 5:16-24).

다섯, 신의 성품(벧후 1:5-7)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되어 있었으나 죄로 인하여 교제가 단절되고 타락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있던 하나님의 모습도 가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믿고 구원의 약속을 받은 성도들은 다시 이 신적 교제에 참예하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천국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약속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성결을 위한 영적 성숙의 단계로 전진해 가야 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한층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윤리 생활의 실천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영성 생활입니다. 본문에는 여덟 가지의 순서 정연한 덕목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에 덕을 쌓고,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라'(5절). 성도의 성결 생활, 즉 영적 성숙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성도의 영성 생활은 일반적인 단순한 윤리 생활과는 다른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사회 윤리 규범을 기초로 생활하지만 신앙인은 믿음을 기초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기초가 되지 않는 성도의 선행, 의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기초가 된 다음에는 덕이 필요합니다. 덕은 특수한 속성으로서 지혜, 선, 능력, 의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용감한 사람보다 덕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 도시 생활에서 완악해질 대로 완악해진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마음을 녹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후덕한 사람입니다. 덕망이 있는 사람은 요란스럽게 일하지 않아도 쉽게 소란을 평정시키며 어려운 일도 손쉽게 해결합니다. 이는 덕을 지닌 사람만이 지니는 특징입니다. 또한 성결 생활에 있어서 성숙은 믿음과 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사람이 덕만 있다 보면 바보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자칫 덕이 교활한 악인의 이용물이 될 수 있고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통찰력의 지식이 더해질 때 덕 있는 사람은 더욱 풍부한 신앙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2.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합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더하라'(6절).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는 것은 통제를 말합니다. 사람이 지식이 많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자만심 때문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남보다 좀더 많이 배움, 명문 학교를 다님, 전문적 지식을 습득함은 스스로 패망의 선봉이 되게 하는 함정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제가 필요합니다. 절제란 모든 지각을 적당히 제제하는 것이요, 동물적 요소를 이성적 요소로 묶어 두는 것입니다. 절제 없는 지식은 유익보다 유해한 때가 많습니다. 한편 절제를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인내는 그저 단순한 참을성이 아니라,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는 역동적인 견고성을 뜻합니다. 이러한 인내는 감정이나 지성에 머물지 않고 의지까지도 조절하게 하여 모든 일에 실수함이나 과함이 없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합니다. 강인한 인내에 경건의 미덕이 공급되어야 비로소 성도는 성결 생활의 본모습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절제의 인내가 강인함, 견고함, 자제력을 의미한다면 경건은 깨끗함, 순결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깨끗함과 순결함이 갖춰지지 않은 인내와 절제는 세속적 처세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3.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해야 합니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7절). 사랑이 없는 경건은 외식이요 위선입니다. 성도가 덕을 쌓고 지식을 얻으며, 절제와 인내와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곧 형제 우애와 이웃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형제 우애(필로스)는 인간 관계의 사랑을 뜻하고 거기에 더하는 사랑(아가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적인 사랑입니다. 즉 인간을 대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의 사랑이 함께 어우러질 때 거룩한 종교적 사랑으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장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사랑은 역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까지 끊임없이 성장해 가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인간적인 사랑에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신적인 사랑이 규합될 때 인간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믿음에서 사랑에 이르는 이 여덟 가지 미덕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덟 가지가 영적 성장을 위한 전진의 단계입니다.


여섯째,  성도로서 가져야 할 덕성은(딤전 6:11)

1.        성도의 의무

1) 정도(正道)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이란 칭호에는 그 이름에 부합한 생활이 따른다는 것을 말해 주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의 정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터득하고 또 그 진리를 고이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소명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나름대로 그 사명이 있고, 들에 핀 꽃 한 송이도 그 사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소명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그 소명을 망각하고 산다면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소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주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3, 14절)고 했습니다. 디모데의 지킬 명령이 곧 우리가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주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 역활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이며, 그 중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신인(神人)으로서 그는 절대적인 중보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사람들은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대하실 때 중보자를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대변자로 활약했으며, 제사장은 죄사함의 중보자로, 왕은 통치의 중보자로 활약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절대적인 중보가 되셨고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중보자의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3. 성도의 사명
성도들에게는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이 건전하고 생활이 경건하며 봉사에 충실할 때 그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타락하여 분열과 사리사욕에 빠질 때 그 사회는 혼란과 역경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도들의 중보적 사명은 실로 막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막중한 사명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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