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enu

Sermon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

Admin 2014.08.25 08:56 Views : 1361 Recommend:31



http://www.kchurchofchrist.com/pdf/082414.pdf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
로마서 8:18-28
바울은 8장17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고난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고난이 주는 쓰라림과 유익함 속에서 인생은 울고 웃으며 살아갑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말하기를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A.        현재의 고난(18)
성도가 하나님을 말씀대로 살며 그 말씀을 즐거워할지라도 그에게는 늘 기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성도가 이 세상 나그네의 길을  가노라면 숱한 고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어디서나 오는 악한 영들의 위협과 진리를 좇는데 따르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세상 죄악의 풍랑에 시달려야 합니다. 뜻밖의 질병과 재난으로 실의에 젖을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 여러번 강의 위험과 동족과 이방의 위험과 시내와 광야와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에게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어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헐벗었노라(고후 11:26,27)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복하는 삶에는 큰 고난이 따릅니다.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웃 사람에게 복음 전파하는 일을 아예 생각조차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남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겠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골 1:24).
우리도 여러면에서 받는 어려움이나 고난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는 다는 생각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1.        고난의 의의
하나님께서 왜 성도에게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고후4:11) 야고보도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사람의 성품을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야고보1:2-4)
2.        우리에게 나타날 장래의 영광
고난이 고난으로 끝난다면 그처럼 허무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고난 뒤에는 영광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된 성도는 미래에 그 소유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 하였습니다.(17절)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갖어노라 했습니다.(갈6:17) 흔적은 낙인입니다.  낙인은 지을 수 없는 표시 입니다. 하나는 종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종의 생활은 주님이 받으신 고난까지 감수 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께 예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은 주님의 것으로 주님이 받는 영광이 약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주님이 다시 강림하실 때 우리에게 주실 영광의 면류관은 영원한 것이며 우리의 모든 슬픔과 눈물을 씻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가진 바울은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 면류관은 자신 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예비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딤후4:7,8)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받는 현제의 고난은 장래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3.        고난에서 영광으로
신앙인의 고난의 삶은 영광에 이르는 여정입니다. 모세가 광야를 거쳐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고,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을 통해 가나안에 도착 하였으며, 예수님께서 멸시와 능욕과 십자가상의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셨습니다. 엠마오로 실망속에서 향하던 두 제자에게 주님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5,26)고 꾸중하셨습니다. 하물며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영광에 이르기 위한 고난이 있음을 알고 기쁨으로 그 길을 해쳐 나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 이길 힘도 주시고 이기지 못할 이리라면 피할 길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10:13)

B.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자격(19)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인간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겨 주시고 관리하고 다스리고 번성시키도록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특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이 특권을 상실한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를 보내시고 인류를 위해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1.        양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영광에 이르게 된다.
양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본 아버지의 권리로부터 자기를 양자삼는 아버지의 권리 아래로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이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양자 된 자는 양아버지의 보호와 감독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양자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였으나 타락으로 인하여 유업을 잃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창세전에 택하시고 택하신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후사가 되게 하셨습니다(참조, 엡 1: 4, 5).  그와 같이 우리들을 양자삼으심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그를 통하지 않고는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2.        양자의 특권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후사가 되므로 또한 상속자가 됩니다(17절).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법적 권리를 가지며 행동의 자유를 누립니다.  자녀가 부모의 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후사로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영광스러운 기업을 차지하신 것처럼 신자들도 장차 이 영광스러운 기업의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  또한 양자는 법적으로 당당하게 아버지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가 부여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자 된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하며 간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양자 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깨끗케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며, 중심으로부터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역사하기고 감화하십니다.


1)        율법에서의 해방
하나님의 양자가 되기 전까지 모든 인간은 율법의 감시 아래 갇혔으나 하나님의 양자가 된 후에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참조 갈 3:24-27).  율법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게 하며 복음의 사명을 이루게 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감으로 양자 된 후로는 율법의 보호와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고 장성한 아들의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이 됨
양자가 됨으로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속의 역사로 인간을 하나님 앞에 이끄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지위에 들어가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고로 하나님은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 주시며 그로 하여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아버지 되심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3)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음
예수께서는 양자 된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양자 된 아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한 곳이며(참조, 계 21:1-27), 평화로운 곳입니다.  거기는 다툼이 없고 시기가 없으며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러한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참조, 계 22:5).

3.        인간의 타락으로 만물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20)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보기에 좋았더라 였습니다. 모든 것이 조화요, 아름다움이요, 평화였습니다. 이러한 평화의 조화가 깨어진 것은 인간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때였습니다. 그때에 세상에는 죽음이 들어오고, 파괴가 이르렀으며, 불안과 분열이 왔고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만물이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4.        인간의 구속으로 만물이 회복 될 것입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그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20절).  인간의 타락은 창조의 조화와 아름다움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사랑고 자유와 생명 대신 싸움과 속박과 사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결국 '피조물은 허무한 데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인간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회복의 때를 약속받았으므로 그때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 즉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위치를 다시 회복할 것입니다.

5.        피조물도 영광을 소망중에 기다립니다.
성도들이 양자의 지위를 완전히 회복하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피조물이   간절히   기다린다  < 아포가라도키아> 라고 말하고있습니다.  피조물이 죽고 썩는 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계에는 썩음과 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죽음도 없고 썩음도 없는 영광이 만물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저주가 왔듯이, 이제 인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썩어짐의 종 노릇에서, 위대한 구속을 통한 자유와 영광이 옵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의 빛이 비췹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됨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변화되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함에서 오는 축복입니다.

18-23까지는 고통에서 영광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피조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창조 때부터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죄로 인하여 자연도 인간과 함께 동일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창 3:17)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말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렘12:4)

C.         믿는 자들이 썩어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고난 받고 싸우는 것이다.
1.        인간을 건져내고 구원해내는 것은 성령의 처움 익은 열매 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란 성령의 임재나 성령의 열매, 즉 생명, 사랑, 즐거움, 평화를 뜻합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을 성령으로 받았음을 확신하고 그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풍성하고 영원한 삶을 살게 되며, 성령의 충만함 즉 하나님의 사랑과 즐거움과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체험하게 됨으로 탄식하게 되고 고난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을 맛봄으로 힘과 용기를 얻어서 그 완전함에 이르고자 탄식하며 애쓰게 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완전한 영광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탄식하며 갈구하게 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ㅗㅁㅁ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몽이 있느니라(고전 15:44)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9)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5:2)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믈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21:4-5)

2.        인간을 건져내고 구원해내는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이란 확신에 찬 기대, 확실한 지식, 내적인 소유, 영적인 보장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는 풍성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믿는자의 소망은 성령에 대한 내적인 경험과 그 증거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믿는 자에게 소망은 약속되었으나 아직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들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입니다. 소망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구속을 바라기에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속 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소망은 내적 소유이며 영적인 보증이며 확실한 기대요 확신하는 지식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망에 의해 구원받도록 선택하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만을 추구하십니다. 소망중에 참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면 바랄수록, 우리는 더욱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소망의 길은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수 잇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오직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품을 때만이 그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것입니다.
4)         믿는 자의 소망은 하나님이 소망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3.        인간을 건져내고 구원해내는 것은 기도와 성령입니다.
믿는 자가 이 세상의 삶의 고난에 직면하게 될 때 그에게는 가장 큰 도움이 근거가 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는 필요할 때면 언제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어려움을 감당하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자신들이 빌바를 알지 못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여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4.        인간을 건져내고 구원해내는 것은 하나님 이십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요15:16, 요16:23-24, 요16:26-27, 롬8:28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