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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우리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드리나?

Admin 2015.06.15 19:50 Views : 619 Recommend:24



http://www.kchurchofchrist.com/pdf/061415.pdf우리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드리나?
How can we glorify God with our lives?
요한복음 3:1-8 [John 3:1-8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A.        하나님의 영광이란?
– Glorifying God with our lives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 자신이시며 바로 하나님 자신이 표현되는 것이다. 출애굽기 40:34,35에 성막이 건축되었을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하였습니다.
“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출40:34,35)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doxa)이란 단어  167회 사용 되였는데 바울 서신에 57회   사용되었고, 요한복음에 18회, 계시록에 17회, 사도행전에 18회, 히브리서에 7회, 공동서신에 20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고린도 교회에 하나의 신앙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제사음식을 놓고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의 다툼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비교적 명쾌한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신앙의 덕을 위해 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좋겠으나 깊이 있게 따져보면 제사음식   또는 우상이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므로, 하나님의 주신 음식으로 감사히 받아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요단어는 덕(남의 유익), 감사의 믿음, 하나님의 영광 등입니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들어 편협하게 강조하면 그로써 오해를 낳게 합니다. 강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느 것을 더 강조해야할지 구분하여 이해해야합니다. 그게 바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걸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잘 키우고 따기 위해서 어디에다 거름을 주고 어느 가지를 잘라주며 어떤 것을 솎아주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거름은 뿌리 가까이에 닿도록, 굵은 가지는 많은 열매를 거느리도록, 골고루 영양공급이 이루어지도록 간격을 만듭니다. When we think about glorying God with our lives, it is not an easy task. There are many situations in which we question if we should do it or not do it. However, there is a way to better understand how we should make decisions in our lives to better glorify God. Think of your life as if you are raising a fruit tree. In order to take care of this tree so that it is fruitful, you must decide how best to put fertilizer, what branches to trim and prune. In the same way, we must decide what aspects of our lives we must nurture and what habits to cut off so that we eventually bear fruit in abundance.
남의 유익을 생각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좋은 모습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지켜야할 귀중한  덕목입니다. 그것은 근본적 신앙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질 경우 올바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일반도덕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시 가장 중요한 결론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인정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제외한 도덕행위는 뿌리 없는 나무열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뿌리보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그런 문화는 사상누각(沙上樓閣)입니다. 언젠가 소멸됩니다. To think about the welfare of others is a good way to nurture our Spiritual lives. This needs to become like second nature in our lives. Without this, we cannot receive God’s approval nor can we glorify Him. Without His approval and without living our lives to glorify Him, we are like trees without roots. Without roots, a tree cannot gain the nutrients needed to bear fruit. Humans have a tendency to care more about outward appearance rather than nurturing our Spiritual growth. Nurturing our spiritual growth is the only way to strengthening our roots.
1.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은 – How do we show God’s glory?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매우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의 많은 예언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이며 어떠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크게 나타낼 수 있는지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도록 하여야 합니다. The only way to truly show God’s glory is to walk daily in His word and to show the fruits of his word in our daily lives.

1)        인생은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 여정 – Our life is but a path to our final destination
아버지와 아들이 도보로 장거리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길가에는 어느덧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긴 여정에 지친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주변 풍경에 매료된 아들은 목적지까지 가지 말고 아예 여기서 텐트를 치고 살자며 아버지에게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간청에 아버지는 며칠만 쉬었다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자 신바람이 난 아들은 텐트만 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나무를 꺾어다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무 그렇게 마음을 쏟을 필요 없다.  우리는 이삼일만 지나면 이곳을 떠나 목적지인 고향으로 가야 하니 여기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말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튼튼한 나무로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꽃을 심으며 온갖 정성을 들였습니다. 마치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말입니다.
There was a father and son who were traveling to a destination. On the way, they found an area where the scenery was very nice so the son asked the father to rest at that location. The father agreed to rest a few days and so told his son to pitch the tent. However, instead of pitching the tent, the son started cutting the trees around the area and started building a house. He continued to plant flowers and put all his effort as if he was going to live at this location even though his father told him that their final destination was far away.

2)        성도의 여정 – A Christian’s Path/Journey
위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우리의 삶도 나그네 여정입니다. 우리 여정의 끝인 목적지는 영원한 천국 본향입니다.(히11:13-16) 잠시 머무르는 현실의 삶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목적지인 천국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목적지인 천국을 생각하면서 힘차게 전진하는 삶을 사는지 그렇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겨 천국 소망이 토색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Just as the previous story of the father and son shows, our lives are also a path through the wilderness. The end destination in our journey is Heaven. Of course it is important to rest along the way but we must never forget our final destination. We need to reflect on our lives at this very moment to confirm that we have not lost sight and hope in our final destination and if we are focused only on what is in front of us in this world.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사람들 – We have been created to glorify God
우리는 천국을 향해 여행하는 나그네입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목적지인 천국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In our path to the final destination, we must remember that we have been created and put on this journey to glorify God. This is the key to reaching and entering that final destination.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1-7) Isaiah 43:1-7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를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1,22) Isaiah 60:21,22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낼 수 있는가?
How can we best show God’s glory through our life that has been given to us for this very purpose?

1)        순종했을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
– The glory of God that is shown through obedience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문둥병자라(왕하 5:1-14) 나아만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King Aram’s General Naman realized the power and authority of God and thus glorified Him.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함락시킨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수6:1-5)(수6:15-20 ) When Joshua brought down the walls of Jericho, God’s manifestation was recorded. The Israelites were obedient to God’s command to circumcise and keep the Passover and thus were able to enter into Jericho and glorify God.

기드온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300명만 데리고 13만명을 치라 명하셨을 때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여 순종하지 않았다면 은혜롭지 못한 결과가 뒤따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순종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역사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It was also shown through Gideon and his 300 men who were instructed to face 130,000 foe. Although it seemed an impossible task, Gideon and his men were obedient and thus were victorious and subsequently glorified God through their victory.

2)         순종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
– Christ set the ultimate example of obedience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던 인류를 해방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심령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을 까요? Jesus Christ was victorious over Satan and overcame the dominion of sin and death thereby glorifying God. With what mindset did Jesus lift up glory to God?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르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뒤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Philippians 2:5-11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5 In your relationships with one another, have the same mindset as Christ Jesus:
6 Who, being in very nature[a]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used to his own advantage;
7 rather, he made himself nothing
    by taking the very nature[b]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8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
9 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10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11 and every tongue acknowledge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4.        예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Meeting Jesus was Glorifying God

1)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남은 구약과 신약의 만남이었습니다.
The meeting of Nicodemus with Jesus was a meeting of the Old and the New Testaments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1, 2 절). 니고데모가 예수를 밤에 찾아온 것은 낮에는 그도 예수께서도 바빴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니고데모는 그의 동료 바리새인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눈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공생애 초기에 유대교의 지도급 인물이 예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만남이며, 율법과 복음의 만남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이 두 만남에서 두 종교의 본질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인 구원에 관해 두 종교가 시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2)        율법과 복음의 접목이었습니다.
– Binding of the law and the gospel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 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한다는 것은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를 이해한 것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 정도로밖에는 이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니고데모가 비록 예수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구약과 신약을, 율법과 복음을 접목시키는 신앙적 연결 고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계시면서 당신의 종들을 보내어 일을 하게 하셨으므로 니고데모의 예수의 대한 관점은 어디까지나 구약적입니다. 그러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야말로 신약적입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가지시고 인간들 속에서 직접 활동하고 계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B, 거듭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4-8)
Being born again was glory to God
1.        거듭나야합니다.
We must be born again
1)        거듭남의 중요성
– The importance of being born again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두 번씩이나 엄숙하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알 수도 없고 또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3, 5 절).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생의 조건은 니고데모처럼 영생에 대한 관심이나 열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니고데모가 소유한 종교적인 영향력을 가지고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표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영생을 얻은 것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2 절). 영생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생명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예하는 삶이 바로 영생이요, 유한하고 불의한 인간의 삶을 탈피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지혜로 또 종교적 율법으로, 양심과 이성과 과학적 사고로 방편을 삼습니다( 고전 1:22, 23).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영생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증거합니다( 요 1:18 ; 3:13-15). 영생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곧 영생이라고 요한은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사귀기 합당한 존재로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땅에서 난 우리가 위에서 오신 신령한 분과 교제하기에 합당한 인격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바로 거듭남의 필요성입니다. Jesus told Nicodemus twice that man must be born again or else he cannot know Heaven and he can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Simply put, we must be born again in order to have fellowship with Jesus Christ. It is not enough to just have curiosity in order to obtain eternal life.  It is not enough to have the intellectual and religious training in order to obtain eternal life. Further, it is not enough to have witnessed miracles in order to obtain eternal life. The only way to obtain eternal life is to be with God who is life. Fellowship with Jesus Christ and only through him can we obtain eternal life. It is not by religion and its laws nor scientific knowledge that we can obtain eternal life. Eternal life is obtained by obtaining the revelation of the will of God in the character of Jesus Christ. This is why having fellowship with Christ Jesus and walking with him in our daily lives is the path to eternal life. As we walk with him, our lives must start to mimic the life and walk of Jesus Christ. We, who are born in this world, must have fellowship with He, who has come from above, thereby changing to be more like him. This is salvation.
2)        거듭남의 정의
– The definition of being born again
  거듭남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주님께 니고데모는 '사람이…어떻게…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4 절)고 되물었습니다. 즉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육체적 재생'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라나 주님의 가르침은 육체적 재출생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이라는 원어는
①         위로부터, ② 하나님께로부터, ③ 새롭게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뜻의 정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인격이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세계에 합당한 존재로 다시 지음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 받는 것이요, 우리의 삶과 운명의 위치가 하늘나라로 전환되는 것이요, 또 우리의 의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식과 조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바는 영생의 조건은 인간들의 종교적 노력과 전통과 영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인격의 참된 변화에 있으며, 그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와의 순수한 인격적인 교제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Nicodemus did not understand when Jesus told him he must born again. He only thought of the physical restrictions of trying to be born again. He did not realize Jesus was referring to Spiritual re-birth. By the power of God, the fabric of who we are changes to something completely new and this new person is now worthy to enter into the realm of God. By our conscience following in the example of our Lord Jesus Christ, by our lives and destiny being pointed to Heaven, and only by God’s power, we are changed. And the purpose of this change is to have a more pure fellowship with Jesus Christ.
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 We must be born again with water and spirit
1)        거듭남의 종류
– The categories of being born again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나'(6 절). 거듭나야 하되 영생을 얻는 것과는 상관없는 거듭남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삶의 철학적 의미를 가진 거듭남을 이야기합니다. 즉 모태 안에 있다가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생물학적 탄생도 거듭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이성에게 첫사랑의 눈을 뜰 때 성인의 세계로 거듭난다고 하고, 죽음을 다른 세계로 거듭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거듭남은 인간 세계의 의미와 정신에 새롭게 눈뜸은 될지언정 결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지고하고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과 부조화한다면 영생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The flesh gives birth to flesh and the Spirit give birth to the Spirit (v6). Though there are many moments of realization/enlightenment/catharsis/epiphany in this world, none of them compare to the rebirth or being born again that we can experience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It is because it is only through being born again in the spirit can we obtain eternal life. All other experiences in this world, though they may be spectacular, have no connection with the gift of eternal life.
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 Born again with water and spirit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5 절)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상의 논쟁이 있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물은 씻음의 상징이요  ( 히 10:21, 22), 성령은 '하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행 1: 8 ; 딛 3: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 앞에 회개하면 모든 불의함을 씻음받고( 요일 1:9, 10), 그분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성 령께서 우리의 인격과 삶을 항상 새롭고 강하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체험은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 다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총입니다. 다만  바람을 볼 수 없으되 바람의 소리와 방향과 그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8 절)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성도는 자신의 영혼과 삶 속에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그 음성과 그 은총의 효능을 체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것은 인간의 개혁이나 결단의 차원을 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본질적 재출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Our Lord said that we can only be saved by being born again of water and spirit. Although there are many opinions about the meaning of this, one thing for sure is that water represents a cleansing by washing away and the spirit represents the power of Heaven. Therefore, when we repent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we receive remission: complete cleansing, of our sins, and we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who continues to strengthen and renew us. All of this is something that cannot be explained by our human abilities but rather it is something that lies within the mysterious power of God. Just as we cannot ‘see’ the wind, we can feel the direction and power of the wind. Those who have fellowship with Jesus Christ can feel the power and movement of the Holy Spirit that resides within us. This is a gift to those who become Christians: those who belong to Christ.
물을 사용하신 것은: 우리 삶에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는 의미가 있고, 모든 생물에 생명을 주며,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람과 분리를 나타내며(출14장),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우리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벧전 3:21)
성령으로 거듭남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심판하시며(요16:10),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며, 우리가 빌바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롬8:26) 성도들안에 거하시며 보혜사로서 일하십니다.
3)        구원받은 성도가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Those who are saved must put their full effort in their daily lives to lift all glory to God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육체의 주인은 이제 하나님 이십니다. By the grace of Jesus Christ, we have been saved. He is now our Lord and God.
첫째는 하나님게서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First, He is our creator.
둘째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보혈을 지불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Second, by the blood of our Lord Jesus Christ, we who would die to sin were saved and made into His people.
고로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성령의 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고전6:19절) Our bodies are a temple for the Holy Spirit and thus our bodies are not our own.
“값으로 산것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고전6:20) We were purchased at a hefty price; sacrifice of His one and only Son, Jesus Christ. So we must honor and glorify Him with our bodies and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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